[오마이뉴스 한림랩 뉴스룸] 만학의 소설가, 소양강 처녀를 삶의 주인공으로 부활시키다
  • 등록일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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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의 소설가, 소양강 처녀를 삶의 주인공으로 부활시키다

[인터뷰] 한림대 교수 정년퇴임 후 소설 집필 시작한 김현용 작가... 86세에 소설 '소양강 처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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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한림랩 뉴스룸은 카페 '호수를 베고 누워'에서 김현용 작가와 만나 소설 '소양강 처녀'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김민서


"하염없이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상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어요."


춘천의 대표 자연 명소인 소양강. 유로연장 156.8km, 유로면적 2784km²에 달하는 소양강의 근화동 강변에는 소양강 처녀상이 우두커니 세워져 있다. 1970년 발표된 가수 김태희의 노래 '소양강 처녀'. 해당 앨범은 1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당시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지난 2005년 만들어진 소양강 처녀상은 해당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기다림과 순정을 상징한다.


그러나 김현용 작가가 바라본 소양강 처녀상은 조금 달랐다. 그가 본 소양강 처녀는 누군가를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을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지켜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소설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장장 10년의 집필 끝에 지난 1월, 소설 '소양강 처녀'를 출간했다. 봄눈이 내리던 지난 6일, 한림랩 뉴스룸은 소양강 처녀상 인근에 위치한 카페 '호수를 베고 누워'에서 김현용 작가를 만나 해당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다림의 상징에서 주체적 삶의 주인공으로


소설 '소양강 처녀'의 배경은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던 1960년대 춘성군(현 춘천시) 서면이다. 소설의 주인공 홍아란은 당찬 성격을 가진 고등학생 여성으로 작품 내에서 '소양강 처녀'를 상징한다. 아란은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의지로 미래를 선택한다. 자기가 원해서 뱃사공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춘성군 서면 사람들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고향에 남는다. 특히 작중에서 아란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찬슬이 미국으로 같이 떠나자고 권했을 때, 아란이 "서면 사람들에게는 내가 필요해"라며 당당히 거절하는 모습은 김 작가가 생각하는 소양강 처녀의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현용 작가는 소양강 처녀가 '내면의 신념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자기 삶으로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가 지금까지 만난 춘천의 여성들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춘천에서 살아 온 김 작가는 "내가 봐온 춘천 여성들은 밝은 성격과 지역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가는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남에게 기대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 자신과 공동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주체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어 그는 "소양강이 춘천을 대표하는 자연물인 만큼, 소양강 처녀도 춘천의 여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용 작가가 소설 '소양강 처녀'를 집필하게 된 이유는 '평등'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다. 지난 2009년부터 3년 동안 춘천 신매교회에 다녔던 그는 "교회를 다니는 동안 매주 소양강 다리를 건너 다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작가는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소양강 처녀상을 눈으로 접했고, 자연스레 노래 '소양강 처녀'의 가사를 곱씹게 됐다.


이때 그가 떠올린 노래 가사와 소양강 처녀상의 이미지는 극히 상반됐다. 가사에는 좋아하는 남성을 그저 애타게 기다리기만 하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실제 그가 반복해서 본 소양강 처녀상은 자신의 고향을 굳건히 지키는 절개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간극을 소설로 해결하고 싶었다. 소양강 처녀를 기다림의 상징에서 주체적 삶의 주인공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김 작가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남녀관을 돌파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남자가 앞장서고 여자가 자신의 운명을 그에게 맡기는 구조를 넘어서 상호 평등한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진정한 성평등은 제도를 넘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며 "이 소설이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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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용 작가가 소양강 처녀상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 김민서


사회복지학과 창립 교수, 만학의 소설가로 거듭나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김 작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를 시작했다. "10대 시절에 소설가 심훈의 '상록수' 같은 계몽소설을 읽고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됐다"는 그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가진 채 1959년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1963년부터 그의 삶은 초대(初代)의 연속이었다.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 나가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초대관장과 영등포노인복지관 초대관장을 역임하는 등 15년간 사회복지 활동을 이어갔고, 이후 1982년 한림대학교 창립과 동시에 초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때부터 초대 사회복지학과장과 초대 사회과학대학장, 초대 대학원장 등 한림대학교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던 그는 지난 2005년 정년 퇴임을 끝으로 24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교수 은퇴 후 8년 정도 지나자, 그는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가장 본질적으로 바라왔던 본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스스로 내린 답은 문학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그의 나이는 80세. 대부분의 소설가가 마지막 작품을 끝으로 펜을 놓을 나이인 팔순에 그는 만학(晩學)의 소설가로서 자신의 첫 소설책 '쥐약 소동'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후로 86세인 올해까지도 펜을 놓지 않았고 그 결과로 '소양강 처녀'를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이때, 사회복지가로서의 경험은 소설가의 삶을 사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사회복지와 소설 집필은 모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자기 삶에서 "소설은 곧 행복"이라고 말했다. 특색 있는 소재를 찾아 소설을 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 속에서 교훈을 전해 사회를 바르게 만들고, 사회구성원들에게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는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설이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채 펜을 잡고, 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이를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2시간씩 작문을 하는 건 이제 일상이다. "몸과 정신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김현용 명예교수는 여전히 소양강의 반짝이는 물비늘을 마음속에 품은 문학청년이다.


덧붙이는 글 | 최민수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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