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 단위 택시비 정산, 할인 공구... 치솟는 물가에 '체리슈머'된 대학생들
오픈채팅방에서 택시 동승자 찾고, 학생회는 '공구' 주선... 고물가 시대 대학가 생존 전략

▲한림대학교 오픈채팅방 ‘택시팟’에서 동승자를 구하는 모습이다. ⓒ 서희원
"지금 학교에서 역 가실 분 계신가요?"
한림대학교 재학생 590명이 가입한 오픈채팅방 '택시팟'에 글이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저요!", "저도 될까요?"라는 댓글이 잇따라 달리며 단 1분 만에 동승자가 확보된다. 목적지 하차 후의 풍경도 일사불란하다. 처음 글을 올린 학생이 채팅방에 자신의 계좌번호와 1원 단위까지 나눈 인당 금액을 올리면 동승했던 학생들은 즉시 모바일 뱅킹으로 송금을 마친다. 과거처럼 현금을 준비하거나 잔돈을 주고받는 번거로움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이동부터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셈이다. 앱을 사용해 모르는 학생들끼리 1원 단위까지 나누어 영리하게 소비하는 대학가의 풍경이다.
이런 대학생들의 알뜰 소비는 어느 특정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화된 현상으로 '체리슈머(Cherrysumer)'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체리피커(Cherry Pick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케이크 위의 체리만 골라 먹듯 필요한 것만 골라 혜택과 실속을 차리는 소비자를 뜻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6년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대비 18.40% 급등했다. 누적된 물가 상승으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한 학생들이 지갑을 닫는 대신 지출을 영리하게 쪼개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전략적 알뜰 소비는 편의점 매대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한림대학교 교내 편의점 직원 김아무개(54)씨는 "1+1 같은 행사 상품이 일반 상품보다 확실히 빠르게 소진된다"며 소비 풍경을 전했다. 그는 특히 "학생들이 편의점 전용 앱을 활용해 포인트 적립이나 행사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을 보며, 알뜰하게 소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저렴한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을 도구 삼아 기업이 제공하는 혜택을 꼼꼼히 활용하는 지능적 소비로 진화한 셈이다.
개별적인 노력을 넘어 학생자치기구가 주도하는 '공동구매(공구)'는 가장 확실한 "지갑 방어" 수단이다. 한림대학교 총학생회는 매년 식품과 생필품의 공동구매를 진행한다. 총학생회는 업체와 사전에 조율된 할인가를 공지하고, 학생들은 이를 확인한 뒤 원하는 품목과 수량을 선택해 선입금하는 방식이다. 이번 1학기 식품 공동구매 품목을 살펴보면, 일부 품목의 경우 시중가 대비 최대 32%의 할인율을 기록했다.
디자인이나 미디어 관련 전공 학생들에게 필수 도구인 어도비(Adobe) 프로그램 역시 총학생회의 '구매력 결집' 대상이다. 개인 구독 시 연간 31만 6800원에 달하는 고가의 비용은 큰 부담이지만, 공동구매를 통해 26만 4000원까지 낮출 수 있다. 5만 2800원을 절약한 것이다. 식품과 어도비 프로그램 공구에 참여한 대학생 박아무개(22)씨는 "식품 공구를 통해 기존 식비의 절반 이상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도비 프로그램은 수업 외에도 사용 빈도가 높아 꼭 필요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다"며 "공동구매를 통해 얻은 경제적 이득 덕분에 학업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림대학교 경제학과 조동훈 교수는 "과거에는 동승자나 공구 대상을 찾는 데 드는 '탐색 및 조정 비용'이 컸으나, 지금은 디지털 플랫폼이 이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소비자는 공급자가 정한 판매 단위를 스스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소비의 민주화' 과정에 진입했다"며, "앞으로 기업들도 상품 단위를 세분화하는 '언번들링(Unbundling)' 전략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이러한 소비 방식은 단순한 절약을 넘어선 지능적 생존 전략이다. 치솟는 물가의 벽 앞에서 대학생들은 한정된 자원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을 분산하고 혜택을 결집하는 체리슈머의 삶을 선택했다. 고물가와 1인 가구 시대가 맞물린 시절에, 필요한 순간에만 영리하게 뭉쳐 지갑을 지키는 모습은 이제 대학가 전체의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소비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